03. 나에게 교육봉사는 어떤 의미일까
유감이지만, 나는 꽤나 ‘돈’에 예민한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돈은 당연히 내가 버는 돈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봉사라면 무료라는 건데, 그럼 왜 해?”
“그 시간에 돈 되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아?”
“너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아?”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명확하다.
YES.
나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오늘은 내가 왜 교육봉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내가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첫 알바는 면접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쪽팔리긴하다.... ㅋㅋ
내가 처음으로 했던 알바는 조금 특이했다.
바로 SW 인재전형 면접 대비 선생님 알바였다.
벌써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나는 광운대학교 정보융합학부에 SW 인재전형으로 입학했다.
참고로 입학 순위는 2등이었다.
2등으로 들어온 이유는 사실 엄청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면접을 잘 봤다. ㅋㅋ
물론 자랑이 맞다.
나는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꽤 잘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1차 서류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부터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면접 준비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 생활기록부에 적힌 내용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어떤 질문이 나와도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인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생각보다 자세히 알지 못한다.
또는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면접장에서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예비 X번을 받거나, 아쉽게 결과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생활기록부를 거의 교재처럼 만들었다

나는 장담하건대, 나처럼 미친 사람처럼
면접을 준비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활기록부의 모든 문장을 하나하나 분리했다.
그리고 그 문장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전부 정리했다.
거의 교재처럼 만들었다.
사실 면접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이 방식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정상이다.
이 방법은 면접학원에서도 알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방법을 알고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핵심 질문을 뽑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생각해보세요.”
면접학원이나 선생님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논리적 허점이 있다.
학생 입장에서 과연 무엇이 ‘핵심 질문’인지 알 수 있을까?
그걸 알았다면, 애초에 면접학원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부터 핵심 질문을 잘 뽑았던 것은 아니다.
감 잡기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정보 공유의 시대 아닌가.
나는 바로 ‘수만휘’에 들어가서 AI 관련 학과,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 비슷한 계열 학과들의 면접 후기를 전부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이 자주 나오는지, 교수님들이 어떤 흐름으로 질문을 이어가는지, 어떤 답변에서 꼬리질문이 붙는지 계속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비슷한 계열의 친구들이 수만휘에서 면접 후기를 보면, 나는 어떤 글인지, 대략 어디쯤에 있는 글인지까지 기억이 날 정도였다.
면접학원이나 선생님들이 “기출 자료”라고 가져온 질문들을 보면, “아 이거 출처가 어디였지”까지 생각날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면접학원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실제 면접장에서도 교수님들께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당당하게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다.
뭔가 내 자랑이 길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일 것이다. ㅎㅎ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알바

아무튼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던 면접 자료와 경험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알바가 뭘까?”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내가 직접 겪고, 준비하고, 결과까지 만들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면접 과외를 해보는 것이었다.
처음 1년 차에는 이미 내가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기 때문에, 면접 일정이 뒤에 있는 후기 대학교를 준비하는 또래 친구의 면접을 도와주었다.
그 친구도 수만휘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나 덕분에(?) 덕성여대 데이터사이언스학과와 성신여대에 무사히 합격했다.
처음 그 친구가 덕성여대에 합격했다고 말해줬을 때, 이상하게 내가 대신 합격한 것처럼 기뻤다.
정말 묘한 행복감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
그냥 무턱대고 수업을 준비하고, 생활기록부를 요약하고, 질문을 만들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꽤 피곤했다.
그런데 약간의 알바비를 받으니, 자본주의 치료가 되긴 했다.
시간 대비로 보면 꽤 괜찮은 금액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잘하는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감각이 좋았다.
그렇게 나의 첫 알바는 지나갔다.
2024년, 본격적으로 면접 과외를 시작하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24년, 나는 본격적으로 면접 과외를 시작했다.
그때는 10명의 학생을 1기와 2기로 나눠서, 각각 5명씩 진행했다.
진짜 정신이 없었다.
매일 카톡하고, 전화하고, 화상회의하고, 자료 만들고, 피드백하고…
어우, 말도 마라.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더 정신없이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근데 또 막상 집에 가만히 있으면 너무 심심하다.
아무래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보다.
2024년에 만난 인연들 중 일부는 지금의 팀코드브릿지 멤버들이기도 하다.
그때 라인업도 꽤 화려했다.
숭실대 AI융합학부, 광운대 정보융합학부, 명지대 인공지능학부, 삼육대 AI 관련 학부, 가천대 SW 관련 학부, 덕성여대, 성신여대 등등.
정말 SW 인재전형으로 갈 수 있는 학교들은 거의 다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 알바로 돈도 꽤 벌었다.
나중에 따로 글을 쓰겠지만, 미국 여행 경비를 전부 벌고도 조금 남았다.
나는 정말 워커홀릭이다

나는 정말 워커홀릭이다.
내 지인들은 모두 알겠지만, 나는 잘 때를 제외하면 거의 항상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나는 애초에 취미가 별로 없다.
춤도 못 춘다.
볼링도 잘 못 친다.
운동도 못 한다.
술도 잘 못 마신다. 물론 위스키는 좋아한다.
당구도 못 친다.
영화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멘토링이나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대학교 면접 과외를 몇 번 하면서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나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같이 찾아주고, 그 사람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
어찌 보면 참 좋은 일이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진짜 행복한 사람인지 알려준 셈이니까.
혼자서는 오래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면접 과외를 하면서 느낀 것도 있다.
혼자 일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리고 외롭다.
외로움도 크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현실적으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학생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최대 몇 명의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할 수 있을까?
나는 딱 말할 수 있다.
4명까지다.
사실 4명도 많다.
그래도 그나마 안정적으로 볼 수 있는 최대치가 4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걸 나 혼자 계속하는 게 맞을까?”
“내가 가진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때 떠오른 솔루션이 바로 이것이었다.
IT 교육봉사 단체를 만들어볼까?
그냥 동아리가 아니라, 봉사단체.
나아가 언젠가는 법인과 같은 형태로 성장할 수 있는 조직.
돈 좋아하는 사람이 왜 봉사단체를 만들까

돈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봉사단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 질문을 스스로 많이 해봤다.
그런데 내 결론은 이렇다.
팀코드브릿지는 나에게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일종의 안식처이자 치유제다.
기계가 계속 일을 하다 보면 과부하가 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지친다.
사람에게는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고, 취미가 필요하고, 다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게 교육봉사였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선순환 구조

나는 선순환 구조를 좋아한다.
멘토가 멘티를 알려준다.
그 멘티가 성장해서 대학생이 된다.
그리고 다시 멘토가 되어 다음 멘티를 도와준다.
멘토가 취업을 하거나 창업에 성공하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여유가 생긴다면 후원까지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경험이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다리를 놓아주는 구조.
그런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이미 멋진 사례가 있다.
정주영 회장님이 만든 아산나눔재단 같은 곳 말이다.
솔직히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곳과 연결되고 싶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상주 직원도 필요하고, 조직의 체계도 더 갖춰야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다.
공익이 끝나는 2년 뒤쯤에는 더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전까지는 Scale Up.
계속 성장해야 한다.
대학생 멘토가 줄 수 있는 것

내가 생각할 때, 대학생 신분은 멘티들에게 가장 공감받기 좋은 시기다.
너무 멀리 있는 어른도 아니고, 너무 가까운 친구도 아니다.
조금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멘티들이 겪는 불안과 고민을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기다.
“저 선배도 나랑 비슷한 시절이 있었구나.”
“나도 나중에 저렇게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구나.”
멘토도 마찬가지다.
“나도 예전에는 멘티 같은 시절이 있었지.”
“내가 받은 도움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구나.”
이 두 수요가 만나 하나의 솔루션을 만들고, 서로 성장하는 곳.
그곳이 바로 팀코드브릿지다.
팀코드브릿지는 나의 취미이자 책임이다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겉으로 보면 엄청나게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완전히 그렇지만도 않다.
어떻게 보면 팀코드브릿지는 장원준이라는 사람의 취미생활의 연장선에 가깝다.
다만 조금 특이한 취미일 뿐이다.
20명이 넘는 팀원이 함께하는 취미.
하지만 나는 내가 시작한 일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한다.
팀코드브릿지는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가져가고 싶은 일이다.
어쩌면 내가 죽는 날까지 함께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사단법인 팀코드브릿지로
아산의 정주영 회장님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자랑스러운 사단법인 팀코드브릿지, 그리고 더 나아가 재단법인 팀코드브릿지의 장원준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계속 정진해보려고 한다.
재미있는 글을 읽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장원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