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사람 사이에서 방향을 맞추는 일

8월 14일 금요일
나는 정선 청소년수련관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있는 팀원들에게
전농동의 한 중식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1년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겉으로 보면
그냥 밥 한 끼 먹는 자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시간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중간평가를 앞두고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했고,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생긴
애로사항이나 고충을 듣는 것도 필요했고,
요청하는 쪽과 실제로 움직이는 팀원들 사이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일을 하다 보면
문서로만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회의록에 적히지 않는 분위기,
채팅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피로감,
공식 회의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작은 불편함들.
이런 것들은
생각보다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가장 좋은 대화 수단은
거창한 회의가 아니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조금은 편하게 웃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일로만 보이던 관계가
조금씩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사람 사이에서
방향을 맞추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회식은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다

나는 회식을
그냥 밥을 먹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는 시간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회식의 진짜 의미는
밥보다 대화에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서로 필요한 말이 쌓인다.
하지만 그 말들이
항상 회의에서 잘 나오지는 않는다.
회의는 보통, 안건이 있고,
정해진 시간이 있고, 정리해야 할 결론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회의 자리에서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말한다.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까 봐,
불평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일을 키우는 것처럼 보일까 봐
말을 아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밥을 먹는 자리에서는
조금 다르다.
딱딱한 회의실이 아니고,
문서가 앞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조금은 편하게 앉아 있다.
그러다 보면
회의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실 이 부분이 조금 어려웠어요.”
“이 일정은 생각보다 부담이 됐어요.”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는 이런 점이 조금 애매했어요.”
이런 말들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제는
항상 크게 터진 뒤에야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불편함이 쌓이고, 오해가 쌓이고
작은 피로감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팀 전체의 분위기를 흔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는 시간이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팀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회식도 그랬다.
내가 사비를 쓴 이유는
거창하게 멋진 리더처럼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이 팀이
조금 더 건강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것.
그게 프로젝트를 오래 끌고 가는 데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이는 것이 아니다

팀이라는 것은
그냥 사람이 모였다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단체에 속해 있다고 해서
같은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서
같은 단톡방에 있다고 해서
바로 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팀은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서로의 상황을 알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특히 1년짜리 프로젝트는
짧은 행사와는 다르다.
하루 이틀만 버티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의욕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피로가 쌓이고
새로워 보이던 일도
반복되다 보면 익숙해지고
서로 조심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각자의 방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진짜 팀 운영이 시작된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분위기만 좋아도 어느 정도 굴러갈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위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역할이 분명해야 하고, 소통이 잘 되어야 하고
어려운 점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가끔은 다시 확인해야 한다.
그런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팀은 조용히 멀어질 수 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속으로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일이 많다고 느끼고
방향이 애매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자기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겉으로만 굴러간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이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만들어야 모이고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야 말이 나오고
관심을 가져야 서로의 상태가 보인다.
나는 이번 회식이
그런 의미의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냥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프로젝트 안에서
어디까지 와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클라이언트와 팀원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요청하는 쪽과 실행하는 쪽 사이에는
항상 어느 정도 간극이 생긴다.
클라이언트는 결과를 봐야 한다.
일정이 잘 지켜지는지
약속한 내용이 구현되고 있는지
예산과 목표에 맞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입장에서는 결과물이 중요하고,
진행 상황이 중요하고
정해진 기준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실제로 움직이는 팀원들은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이 있고,
처음에는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면 복잡한 일이 있고,
현장에서만 보이는 어려움이 있고,
각자 개인 일정과 체력의 문제도 있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클라이언트의 입장도 맞고,
팀원들의 입장도 맞다.
다만 바라보는 위치가 다를 뿐이다.
요청하는 사람은 전체 결과를 먼저 본다.
실행하는 사람은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의 어려움을 먼저 느낀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는 어떤 면에서
클라이언트와 팀원들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다.
요청하는 쪽의 기대도 이해해야 하고,
실제로 움직이는 팀원들의 상황도 이해해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을
팀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야 하고,
팀원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클라이언트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한쪽 말만 들어서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
클라이언트의 말만 들으면
팀원들이 지칠 수 있고,
팀원들의 말만 들으면
프로젝트의 기준이 흐려질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다.
프로젝트 총괄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일을 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서로의 언어를 맞추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계속 조율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양쪽 말을 모두 들어야 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어려운 위치에 있다.
한쪽에서는 더 빠른 결과를 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이 정도는 당연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걸 해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한다.
이 사이에서
중간에 있는 사람은
계속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바로 전달할지, 무엇을 조금 더 정리해서 말할지
무엇을 조율해야 할지, 무엇은 단호하게 기준을 잡아야 할지.
이게 쉽지 않다.
잘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애매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왜 빨리 정리하지 못하느냐고 느낄 수 있고,
팀원들 입장에서는
왜 우리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전달 능력이 아니다.
해석하는 능력이다.
클라이언트가 말하는 요구사항 속에서
진짜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고,
팀원들이 말하는 어려움 속에서
실제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그 말이 단순히 빨리 하라는 뜻만은 아닐 수 있다.
진행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아서 불안한 것일 수도 있고
중간 산출물이 필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일정 관리가 조금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반대로 팀원들이 “이 일정은 부담스럽다”고 말할 때도
단순히 하기 싫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범위가 불명확한 것일 수도 있고
우선순위가 정리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역할 분담이 애매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그대로만 전달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사람은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의도를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양쪽 말을 모두 듣고,
그 안에서 진짜 문제를 찾고,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연결해야 한다.
그게 조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밥 한 끼가 팀을 바꿀 수 있다

밥 한 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회식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일정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역할 분담이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고
클라이언트와 팀원 사이의 간극이
한 번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밥 한 끼가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대화의 시작이 중요하다.
일을 하다 보면 문제 자체보다
문제를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더 큰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어려운 점이 있는데 말하지 못하고
불편한 점이 있는데 쌓아두고
서운한 점이 있는데 그냥 넘기고
방향이 헷갈리는데 묻지 못하면
팀은 조금씩 느슨해진다.
반대로 작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팀은
문제가 커지기 전에 조정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조금 힘들었어요.”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일정은 조금 더 일찍 공유되면 좋겠어요.”
“이 역할은 명확히 나누면 좋겠어요.”
이런 말들이 나와야
팀은 좋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가끔은 일하는 자리 밖의 시간이 필요하다.
같이 밥을 먹고,
조금 편한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근황도 듣다 보면
상대방이 단순히 역할로만 보이지 않는다.
개발 담당자, 기획 담당자
운영 담당자, 멘토, 총괄.
이런 이름표 뒤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
사람이 보이면
소통이 조금 달라진다.
상대방의 말이 요구나 불평으로만 들리지 않고,
그 사람이 놓인 상황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밥 한 끼는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한 끼가
팀 전체를 갑자기 바꾸지는 못해도
대화의 문을 열어줄 수는 있다.
결국 팀을 오래 가게 만드는 것은 조율이다

팀을 오래 가게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열정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추진력으로
팀이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추진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야 하고,
역할을 다시 정리해야 하고,
일정과 기대치를 맞춰야 하고,
서로의 입장을 계속 조율해야 한다.
특히 프로젝트가 길어질수록
조율은 더 중요해진다.
처음에는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시작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상황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바빠지고, 지치고,
더 많은 책임을 느끼고
누군가는 방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질 수 있다.
이때 아무도 조율하지 않으면
팀은 각자 다른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총괄의 역할은
단순히 결과를 챙기는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챙기는 것도
총괄의 중요한 일이다.
누가 힘든지, 어디서 막히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부분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계속 봐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가끔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가끔은 너무 많은 것을 챙기려다가
오히려 놓치는 것도 생긴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 사이에서 방향을 맞추는 일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은
점점 더 느끼고 있다.
좋은 팀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듣고
중간에서 말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서로의 입장을 연결해야 한다.
그 과정이 있어야
팀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이번 정선팀 회식도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었다.
단순히 밥을 먹은 시간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일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느낄 때
조금 더 오래 함께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필요한 순간에는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거창한 회의가 아니어도 좋다.
가끔은 밥 한 끼가 팀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광복절 대체휴일이라서 출근을 안한
장원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