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기준이 있어야 덜 흔들린다

살다 보면
좋은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계속 생긴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일, 의미 있어 보이는 일
누군가 부탁한 일
지금 안 하면 아쉬울 것 같은 일.... 등등
하나하나만 보면
전부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꽤 괜찮은 일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전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서
전부 내가 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기준이 없으면
모든 일이 다 중요해 보인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고
조금만 더 시간을 쓰면 될 것 같고
조금만 더 무리하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런 편이다.
수면 시간이 크게 무너지지 않고
기존에 하던 일에 피해가 생기지 않는다면
새로운 일을 비교적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리고 주말은
기본적으로 개인 시간과 휴식으로 남겨두려고 하지만
막상 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 또 심심해서
남은 잔업을 정리하거나
나를 조금 더 개발하는 시간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헷갈린다.
나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일을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그냥 바쁘게 사는 게 좋은 건가.
아니면 나름대로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이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나에게 기준이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래 가기 위해 나를 지키는 선에 가깝다.
그래서 오늘은
기준이 있어야 덜 흔들린다는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좋은 일이라고 전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은 생각보다 많다.
배울 수 있는 일도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도 있고
경험이 될 만한 일도 있고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도 있다.
문제는
좋은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나만 보면
거절하기 어렵다.
“이건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건 지금 안 하면 아쉬울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새로운 일을 볼 때
그냥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편이다.
재미있어 보이면 해보고 싶고
의미 있어 보이면 참여하고 싶고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면
괜히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전부 내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 내가 할 일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일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가 맡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일은 분명 기회지만
지금 붙잡으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흔들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볼 때
이 질문이 필요하다.
이 일이 좋은 일인가보다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이 일이 의미 있는가보다,
내가 지금 맡고 있는 것들을 해치지 않고 할 수 있는가.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보다,
내 기본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고 가져갈 수 있는가.
좋은 일은 많다.
하지만 내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다.
모든 좋은 일을 다 잡으려고 하면
정작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있어야
좋은 일 앞에서도
조금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일이 급해진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일이 급해진다.
지금 안 하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안 하면 안 될 것 같고
거절하면 기회를 놓치는 것 같고
미루면 뒤처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계속 급해진다.
원래 하던 일도 급하고
새로 들어온 일도 급하고
누군가 부탁한 일도 급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급하다....
전부 급해 보이면
결국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보이지 않는다.
나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장원툴 일도 중요하고
팀코드브릿지 일도 중요하고
블로그도 계속 써야 하고
프로젝트도 챙겨야 하고...
중간중간 급한 작업도 생긴다.
각각만 놓고 보면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전부 한꺼번에 중요해지면
내가 먼저 흔들린다.
그래서 기준이 없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시간표가 아니라 마음인 것 같다.
계속 쫓기는 느낌이 든다.
뭔가 하고 있는데도
다른 일을 못 하고 있는 것 같고
하나를 끝내도
남은 것들이 계속 신경 쓰이고
쉬고 있어도
괜히 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럴 때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면은 무엇인지.
이미 맡고 있는 일 중
절대 흔들리면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
새로운 일을 받을 때
어디까지는 가능하고
어디서부터는 무리인지.
이런 기준이 있어야
모든 일을 같은 무게로 보지 않을 수 있다.
기준은
일을 덜 하기 위한 핑계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하기 위한 기준선이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일이 급해지고
기준이 있으면 급한 일 속에서도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지 조금은 보인다.
내 기준을 알아야 선택이 쉬워진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수면과 기존의 책임을 지키는 선 안에서
새로운 기회와 성장을 받아들이는 것.
이게 지금 내 기준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나는 솔직히
새로운 일을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일이 생기면
궁금해지고, 해보고 싶고
어떻게든 연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잠이 계속 무너지면 오래 갈 수 없다.
수면이 무너지면 컨디션이 무너지고
컨디션이 무너지면 판단도 흐려지고
판단이 흐려지면
기존에 하던 일의 퀄리티까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수면은
그냥 쉬는 시간이 아니다.
계속 일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반에 가깝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존의 책임이다.
이미 맡고 있는 일이 있는데
새로운 일을 받는 바람에
원래 하던 일이 흔들린다면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맡은 일을 제대로 끝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내 기준은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망가뜨리지 않고 할 수 있느냐”에 가깝다.
이 기준이 생기면
선택이 조금 쉬워진다.
좋아 보이는 일이 들어와도
바로 잡기 전에 한 번 생각할 수 있다.
Q1. 이 일을 하면 잠이 무너지는가?
Q2. 이 일을 하면 기존에 맡은 일에 피해가 가는가?
Q3. 이 일을 하면 내가 오래 가져갈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괜찮다고 답할 수 있으면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걸린다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기준을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어디서 무너지는지 아는 것이기도 하다.
거절도 기준이 있어야 덜 미안하다

거절은 어렵다.
특히 좋은 의도로 들어온 부탁은
더 거절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나를 믿고 말한 것 같고,
내가 도와주면 잘 될 것 같고,
괜히 거절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내 상황보다 상대방의 기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거절하면 너무 차갑게 보이지 않을까?”
그런데 기준 없이 받아들인 일은
나중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수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기존에 하던 일도 밀리고, 몸도 피곤해지고
마음도 예민해질 수 있다.
그러면 결국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거절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 있으면
거절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가 된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책임 있게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어서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차이는 크다.
나도 거절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좋은 일처럼 보이면 흔들리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마음이 쓰이고
내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으면
괜히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지금 이 일을 받으면
정말 잘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냥 미안해서 받는 것인지
받아놓고 제대로 못 하는 것보다
처음에 솔직하게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더 책임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거절은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아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선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 선이 있어야 나도 오래 가고
상대방도 나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기준은 고집이 아니라 방향이다

기준이 있다고 하면
가끔 고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이 기준이 있으니까 절대 안 해.”
“내 방식은 이거니까 바꿀 수 없어.”
“나는 이렇게 정했으니까 무조건 이렇게 갈 거야.”
물론 기준이 너무 딱딱해지면
고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기준은
그런 고집과는 조금 다르다.
기준은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방향에 가깝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조정될 수는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생기면
잠깐 무리할 수도 있고,
평소보다 바쁜 시기에는
일정이 조금 흔들릴 수도 있고,
좋은 기회가 왔다면
기존 계획을 다시 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무너지면 안 되는 선은 있어야 한다.
내 몸이 망가질 정도로 무리하지 않는 것.
이미 맡은 일을 흔들면서까지
새로운 일을 잡지 않는 것.
쉴 시간까지 전부 일로 채우지 않는 것.
이런 선은
내가 오래 가기 위해 필요한 방향이다.
쉬어야 할 때는 쉬고,
에너지가 남을 때는 나를 위해 쓰는 것.
결국 기준은
나를 빡빡하게 묶는 규칙이 아니라
내가 오래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방향이다.
기준이 있어야
무리할 때와 멈출 때를 구분할 수 있다.
결국 나를 지키는 것은 기준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좋은 기회 앞에서 흔들리고
부탁 앞에서 흔들리고
불안 앞에서 흔들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앞에서 흔들린다.
나도 그렇다.
해야 할 일이 많아도
좋아 보이는 일이 생기면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쉬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잔업이 남아 있으면
괜히 조금만 더 해볼까 생각한다.
이미 바쁜데도
새로운 일이 의미 있어 보이면
마음이 움직인다.
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새로운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오래 가져가기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조건 모든 기회를 잡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조건 바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내 리듬을 지키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그 기준은
수면과 기존의 책임을 지키는 선 안에서
새로운 일과 성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
이미 맡은 일을 흔들지 않는 것.
주말에는 나를 회복시키되,
필요하다면 나를 개발하는 시간으로 쓰는 것.
이 정도가 지금의 나에게는
꽤 현실적인 기준인 것 같다.
물론 매번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할 것이다.
가끔은 급한 일이 생기고, 무리하게 되고,
기준을 세워놓고도
내가 먼저 흔들릴 수 있다.
그래도 기준이 있으면
흔들린 뒤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내가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
어디서부터는 조심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오래 갈 수 있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기준이 있어야 덜 흔들린다.
기준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오래 가게 만드는 선이다.
을지훈련 주간이라 아침부터 책상을 옮긴
장원준 드림.